여주 신륵사이야기
여주 신륵사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고려 말 나옹화상의 입적 후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조선시대 세종의 영릉을 여주로 천장한 1469년부터 조선 왕실에서 신륵사를 원찰로 중수하고,
현종, 영조, 철종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봉미산 신륵사 일주문
절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되는 문을 일주문(一柱門)이라고 한다.
두 개 혹은 네 개의 기둥을 일렬로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는 것이다.
▲ 불이문(不二門)
진리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이(不二), 일체의 분별을 떠난 그 경계로 들어가는 상징의 문이 불이문이다.
▲ 석가탄신일을 맞이하고 있는 극락보전 앞뜰
▲ 극락보전(極樂寶殿)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주존(主尊)으로 모신 사찰의 중심 전각이다.
♤ 여주 신륵사에 있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8점"
우리의 문화재 국보와 보물에 관심을 갖고 돌아본 후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 보물 제225호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 (驪州 神勒寺 多層石塔)
신륵사 극락보전 앞에 있는 탑으로, 기단(基壇)을 2단으로 마련한 후,
그 위로 여러 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각 부분의 세부적인 조형방법은 전혀 달라서,
기단에서부터 탑신부까지 전부 한 장씩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 보물 제1791호
여주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驪州 神勒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像)
주존인 불상을 좌상으로 하고 협시상을 입상으로 한 구성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전통이다.
불상과 보살상들은 모두 상호와 상체가 긴 편인데, 특히 불상의 육계는 유난히 길게 조성되어 있다.
불상의 큼직큼직한 나발과 단순하게 처리한 법의 자락은 조선초기부터 내려오던 특징이다.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조성자와 조성시기가 분명할 뿐만 아니라
인일이라는 새로운 조각승의 이름이 확인되어 향후 조선시대 불상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작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 보물 제180호
여주신륵사 조사당(驪州 神勒寺 祖師堂)
신륵사는 봉미산 기슭에 있는 조선시대의 절로, 원래는 신라시대에 지었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조사당은 절에서 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건물로, 신륵사 조사당에는 불단 뒷벽 중앙에 지공을,
그 좌우에는 무학과 나옹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조선 전기의 조각 수법을 보이고 있으며 규모는 작지만 균형이 잘 잡힌 아담한 건물이다.
▲ 보물 제230호
여주신륵사 대장각기비 (驪州 神勒寺 大藏閣記碑)
신륵사에 세워져 있는 비로, 극락보전 서쪽 언덕에 있었던 대장각(불경을 만들어 보관하던 곳)의
조성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을 적고 있다.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우왕 9년(1383)이다. 거북 모양의 비받침, 용의 머리가 새겨진 비머리가
고려 후기로 오면서 사각형 받침과 지붕 모양의 머릿돌로 간략화되는데, 이 비도 그러한 예이다.
▲ 보제존자석종과 석등 (석등의 오른쪽 작게 보이는 비가 보제존자석종비이다)
▲ 보물 제228호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驪州 神勒寺 普濟尊者石鍾)
신륵사 뒷편에 모셔져 있는 나옹의 사리탑으로, 널찍하게 마련된 단층 기단(基壇) 위에 2단의 받침을 둔 후
종 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돌을 쌓아 넓게 만들고 앞쪽과 양 옆으로 계단을 두었다.
탑신은 아무런 꾸밈이 없고,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불꽃무늬를 새긴
큼직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솟아 있다.
고려 우왕 5년(1379)에 세운 것으로, 나옹이 양주 회암사 주지로 있다가
왕의 명으로 밀양에 가던 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하니,
그 제자들이 절 뒤에 터를 마련하여 이 탑을 세워 두었다.
고려 후기의 석종형 부도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 보물 제231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 (驪州 神勒寺 普濟尊者石鍾 앞 石燈)
신륵사 서북쪽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세부분으로 이루어진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에는 표면 전체에 꽃무늬를 가득 새겨 장식하고 있다.
화사석은 각 면에 무지개 모양의 창을 낸 후, 나머지 공간에 비천상(飛天像)과 이무기를 조각했다.
지붕돌은 두꺼우나 여덟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경쾌하여 무거운 느낌을 덜어준다.
고려 우왕 5년(1379) 보제존자석종 및 석비와 함께 세워진 작품으로,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며, 고려 후기의 대표적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 보물 229호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驪州 神勒寺 普濟尊者石鍾碑)
신륵사에 모셔진 보제존자 나옹의 탑비이다.
보제존자 나옹은 선종과 교종을 통합하여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하였던 승려로,
양주 회암사의 주지로 있다가 왕의 명을 받아 밀양으로 가던 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이후 그를 따르던 문도들이 절안에 터를 마련하여 사리를 안치한 석종과 석비를 세워두었다.
▲ 보물 266호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驪州 神勒寺 多層塼塔)
아래로 한강이 굽어보이고 강 건너 멀리 평야를 마주하고 있는 경치좋은 바위 위에
이 전탑이 세워져 있다.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이르며,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와 경상북도 안동지역에서 몇 기가 남아 있다.
♧ 보물에 대한 설명 내용은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에서 따옴
▲ 범종각(梵鐘閣)
▲ 강월헌 옆에 있는 3층석탑은 나옹화상의 화장을 한 장소
▲ 여강의 벼랑위에 서있는 강월헌(江月軒)
江月軒은 나옹화상의 당호인데 그를 추념하여 이곳에 누각을 세운 것이다.
▲ 경강선 여주역의 모습
여주역에 내리면 붉은색 버스가 보이는데 시티투어버스이다. 가와 나 두 노선으로
세종대왕릉, 신륵사, 강천섬, 명성황후 생가 등 관광지를 순회한다.
요금은 일반 5,000원, 경로우대는 3,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