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6월초의 세미원

새로운숲 2016. 6. 4. 13:05

세미원(洗美苑)

- 물과 꽃의 정원 세미원 -


경기 양평군 양서면 양수로 93

http://www.semiwon.or.kr/

 

세미원(洗美苑)의 명칭은 고전의 관수세심(觀水洗心)하고 관화미심(觀花美心)하라에서 따왔다.  

물을 보고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하라는 옛 선조들의 정신을 담아 세미원이라 이름 짓고,

그 정신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 자료일부는 세미원 홈페이지를 참조하였음 

▲ 세미원 관람안내도



불이문(不二門)과 팔괘담(八卦牆)-자연과 사람은 둘이 아니다




장독대분수

이곳은 한강물이 더욱 맑아지기를 기원하는 제단을 상징한다.

한강에서 끌어온 물은 365일을 상징하는 항아리를 통해 솟아오른다


♣ 6월초에 찾아간 세미원에는 연꽃을 볼 수 없었다. 6월말~8월중순이 개화시기라고 한다. 

연꽃이 필때 다시 한 번 찾아 갈 생각이다.


페리기념연못

세계적인 연꽃 연구가 페리 슬로컴선생이 기증한 연꽃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그를 기념하여 페리기념연못으로 부른다.


▲ 애련문









세족대(洗足臺)

발을 씻는다는 의미로 탁족(濯足)이라고도 한다. 세미원에는 발을 씻을 수 있는 곳이다.


유상곡수(流觴曲水)  

흐르는물에 선비의 풍류를 띄우다”-유상곡수(流觴曲水)

유상곡수란 굽이굽이 흐르는 물에 찻잔 또는 술잔을 띄워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풍류를 즐기던 전통 정원시설을 말한다


▲ 열대수련원

(열대수련의 개화시기는 6월말에서 10월)








약속의 정원 세한정(歲寒庭)

추사 김정희 선생께서 유배생활 중에 제자 우선 이상적 선생에게 그려준 세한도를 공간에 펼쳐 정원으로 조성하였다.




   김정희필 세한도에 대한 설명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실학자로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금석학을 연구하였으며

뛰어난 예술가로 추사체를 만들었고 문인화의 대가였다.

이 작품은 김정희의 대표작으로 가로 69.2, 세로 23의 크기이다.

이 그림은 그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으로

그림의 끝부분에는 자신이 직접 쓴 글이 있다.

이 글에서는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며 답례로 그려 준 것임을 밝히고 있다.


김정희필 세한도 (金正喜筆 歲寒圖) 국보  180호.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세심로(洗心路) 

마음을 씻는 길로 빨래판으로 포장되어 있으며. 한강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길을 걸을 수 있다. 가가가



▲ 사랑의 연못

프랑스 화가 모네의 그림 수련이 가득한 정원을 참고하여 만든 사랑의 연못




청개구리분수


▲ 청개구리영어도서관

세미원의 연못에 살고 있는 개구리들 중 아이들에게 친근한 청개구리로 이름을 붙였다.

이곳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영어로 된 동화책을 읽거나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다.





▲  정자 뒤쪽 울타리 옆으로 북한강이 흐른다.





▲  세한정 위를 가로질러가는 신양수대교 아래에는 휴식공간과 공연장이 마련되어 있다


전철 차창에서 바라본 북한강


열수주교(烈水舟橋) : 배다리

열수주교(冽水舟橋)는 한강에 배를 이어 놓은 다리다. 열수(冽水)는 한강을 이르는 옛말이다.

배를 여럿 이어 만든 다리로. 정조임금이 부친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하러 갈 때 한강에 설치되었던 배다리를 복원 했다. 

▲ 이 열수주교는 세미원과 두물머리를 이어준다.


두물머리

두물머리(兩水里)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儉龍沼)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

400년 넘은 느티나무


합쳐진 두 물은 멀리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 한강으로 흘러간다.


예전에는 이곳의 나루터가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는 강원도 정선과 충청북도 단양,

그리고  서울 뚝섬, 마포나루를 이어주던 정착지로서 매우 번창 하였다고 한다.




국보  180

김정희필 세한도 (金正喜筆 歲寒圖)

국립중앙박물관

 

김정희필 세한도에 대한 설명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실학자로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금석학을 연구하였으며 뛰어난 예술가로

추사체를 만들었고 문인화의 대가였다. 이 작품은 김정희의 대표작으로 가로 69.2, 세로 23의 크기이다.

이 그림은 그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으로 그림의 끝부분에는 자신이 직접 쓴 글이 있다.

이 글에서는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며 답례로 그려 준 것임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