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비(三田渡碑)
사적 제101호/1639년(인조 17년)
서울 잠실동 47번지
잠실역 2호선 3번출구에서 직진
이 비는 병자호란 때 승리한 청나라 태종(太宗)의 요구로 1639년(인조17) 12월에 세운 비석이다.
정식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 이지만
1963년 문화재 지정 당시 지명을 따서 삼전도비(三田渡碑)라고 지었다.
한강의 물길이 닿는 나루터였던 삼전도는 1950년대까지 나릇배가 다녔으나 1970년대 이후 한강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비석의 원래 자리는 현재의 석촌호수 서호 내부에 위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비석은 대리석 계통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비석의 높이는 3.95m, 폭 1.4m이다.
귀부(龜趺:거북이 모양을 조각한 받침)위에 비문을 새긴 몸돌을 세우고 위에는
이수(蛦首:용 모양을 새긴 머릿돌)를 장식했다.
비석 엎에는 몸돌과 이수가 없는 작은 귀부가 하나 남아있는데, 이는 더 큰 규모로 비석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청나라 측의 요구에 의해 당초 만들어진 귀부가 필요 없어지면서 남겨진 것으로 추측된다.
▲ 귀부
▲ 이수
▲ 몸돌과 이수가 없는 귀부
비문에는 청나라에 항복하게 된 경위와 청 태종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 때문에 당대의 문장가들이 비문을
짓기를 꺼렸으나 부제학 이경석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알고 비문을 지었고, 글씨는 도총관 오준이 썼다.
비석 앞면 왼쪽에는 몽골글자, 오른쪽에는 만주글자가, 뒷면은 한자가 각각 새겨져 있어 17세기 세 나라의
언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비문의 굴욕적인 내용 때문에 1895년(고종32) 고종은 삼전도비를 땅 속에 묻게 했으나
일제는 1913년 다시 삼전도비를 세웠고 1956년에는 당시 문교부의 주도하에 땅 속에 다시
묻는 등 비석의 수난은 이어졌다.
1963년 홍수로 비석의 모습이 드러난 후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1983년 석촌동 아름어린이공원 내에 세워졌다가 2010년 원 위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세워야 한다는 중론에 따라 현재의 자리인 이곳 석촌호수 주변에 옮겨졌다.
사진은 석촌동 아름어린이공원에 자리하고 있을때의 모습
2010년 3월에 송파구 석촌동 289-3번지에 위치하던 비석을 고증을 통해 석촌호수 서호 옆으로 이전하였다.
조선 전기까지 조선에 조공을 바쳐오던 여진족은 명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 급속히 성장하여
후금을 건국하고, 더욱더 세력을 확장하여 조선을 침략하는 등 압력을 행사하면서 조선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였다.
나라의 이름을 청으로 바꾼 여진족이 조선에게 신하로서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하자
두 나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결국 인조 14년(1636) 청나라 태종은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조선에 쳐들어와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남한산성에 머물며 항전하던 인조가 결국 청나라의 군대가 머물고 있는 한강가의 삼전도 나루터에서
항복(삼배구고두: 三拜九叩頭)을 하면서 부끄러운 강화협정을 맺게 되었다.
병자호란 후 조선은 청에 대해서 사대(事大)의 예를 지킴에 따라 조공(朝貢) 관계가 유지되었다.
인조와 관련되 사건들
1623년 인조반정 : 광해군을 쫓아내고 조선 16대 왕으로 즉위
1624년 이괄의 난 : 공주로 피신(7일동안)
1627년 정묘호란 : 후금은 군사 3만여 명을 이끌고 의주를 함락시키고 평산까지 처들어옴
최명길의 주장을 받아들여 강화조약을 맺음
1636년 병자호란 : 청태종이 10만여 명의 군대를 이끌고 재차 침입
남한산성에서 항거하였으나 40여일만에 삼전도에서 항복하여 군신의 예를 맺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17대 효종)을 그리고 척화파의 삼학사인 홍익한 윤집, 오달제를
불모로 데려갔음
1644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쓰러뜨리고 북경으로 수도를 옮김
현절사(顯節祠)
남한산성에 가면 병자호란 때 적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했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삼학사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 있다.
삼양에 끌려간 이들은 잔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청 태종을 오랑케라
준엄하게 꾸짖었고 마침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한다.
삼전도비 뒤로 롯데타워가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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